‘놀면 뭐하니?’ 출연에 실시간 검색어 1위 등극
이효리가 찍은 ‘뉴트로 장인’..이미 유튜브 스타로 이름 날려
“순수하고 행복한 90년대 감성에 끌려”
강다니엘, 엑소 수호와 작업..올라운드 플레이어가 꿈

‘뉴트로 장인’으로 불리는 박문치는 보컬이 아닌 작곡가 겸 프로듀서로 대중의 주목을 받은 이례적인 뮤지션이다. 최근 MBC ‘놀면 뭐하니?’에 출연, ‘이효리 픽’으로 눈도장을 찍으며 전국구 스타가 됐다.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제공]
‘뉴트로 장인’으로 불리는 박문치는 보컬이 아닌 작곡가 겸 프로듀서로 대중의 주목을 받은 이례적인 뮤지션이다. 최근 MBC ‘놀면 뭐하니?’에 출연, ‘이효리 픽’으로 눈도장을 찍으며 전국구 스타가 됐다.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방탄소년단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 지코의 ‘아무 노래’에 90년대 감성을 입혔다. 감탄이 이어졌다. “왜 문치 문치 하는지 알겠네.”(유재석) 유튜브를 탈출한 ‘뉴트로 장인’의 주말 예능(‘놀면 뭐하니?’) 나들이는 파장이 컸다. 실검 1위는 기본이었다. “90년대 음악을 가장 잘 소화하는 프로듀서”라는 한 마디에 ‘이효리 픽’으로, 소위 말해 ‘떴다’. 하지만 난데 없이 튀어나온 신인가수라고 생각했다면 오산. 이미 온라인에선 멋과 재미 좀 아는 ‘신박한’ 뮤지션으로 이름을 날렸다. 황량한 한강 고수부지를 배경으로 ‘옛날 필터’를 입힌 ‘네 손을 잡고 싶어’ 뮤직비디오엔 신종 댓글놀이가 이어진다. “박문치씨 이민 가셔서 지금은 LA한인타운에서 일식집 하신다네요.” 박문치가 응답했다. “ㅋㅋㅋㅋㅋ 아 저 한국살거덩여?????”

시간을 넘나들며 등장한 박문치(본명 박보민·24)는 요즘 가장 ‘힙’한 뮤지션의 반열에 올랐다. 최근 홍대 인디거리에 위치한 레이블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에서 만난 박문치는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며 근황을 들려줬다. 유재석 이효리 비가 뭉친 혼성그룹 ‘싹쓰리(SSAK3)’의 데뷔곡에도 공모했고, 이들이 다시 부른 듀스의 ‘여름 안에서’ 프로듀서로도 이름을 올렸다. “하루에 1~2시간을 자며 작업 중”인 날들이다.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제공]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제공]

박문치는 최근 몇 년 사이 불어닥친 ‘뉴트로(새로움(New)과 복고(Retro)의 합성어) ’ 열풍의 ‘선구자’ 격이다. 그가 대중 앞에 처음 등장한 것은 2017년. 당시 본명 박보민으로 ‘울희액이’를 발표했다. 복학생의 심경을 담아낸 이 노래가 ‘뉴트로 장인’의 1호 작업물. ‘울희액이’는 SNS를 타고 회자되며 이슈가 됐다. “유통사도 없이 혼자 만들어 낸 앨범이었는데 온라인 유머 페이지에 퍼지면서 이슈가 됐어요.” 박문치는 “첫 앨범치고 반응이 괜찮았다”고 했지만, 10~20대 사이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이름은 그때 바꿨다. 키우던 강아지인 ‘뭉치’의 이름을 바꿔 ‘문치’로 했다. 실패 없는 도전기의 시작이었다.

“90년대엔 다양하고 과감한 것들이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한테는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그 시대를 알기는 하지만, 직접 겪지는 못했잖아요. 자세히 들여다 보니 굉장히 신선하고 매력적이었어요. 무대 매너도 지금과는 너무나 느낌이 달랐고요.”

박문치의 음악은 복합적이다. 시티팝이나 뉴잭스윙 등의 장르 구분은 무의미하다. 음악 색깔은 기본, 동묘 구제숍을 돌며 그 시절 패션을 완성했고, 뮤직비디오의 배경이 되는 공간까지 발품 팔아 찾아냈다. 한 땀 한 땀 담아낸 20세기 감성이다. “90년대 정서에서 가장 끌렸던 것은 순수와 행복이었어요. 모든 곡이 행복한 건 아닌데, 콘셉트가 확실하더라고요. 지금은 모든 걸 돌려 말하는 경향이 있는데, 슬프면 울고 소리 지르는 일차원적인 표현, 아니면 아예 댄스로 만드는 식의 표현 방식이 마음에 들었어요. 지금 이런 걸 하면 어떨까, 재밌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시작이었어요.”

[MBC ‘놀면 뭐하니?’ 캡처]
[MBC ‘놀면 뭐하니?’ 캡처]

그의 음악이 특별한 것은 90년대 감성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한다는 데에 있다. 분명 과거를 소환했지만, 2020년의 일상이 무심하게 들어앉았다. 90년대 혼성그룹의 상큼발랄함을 전면에 내세운 ‘널 좋아하고 있어’엔 ‘널 많이 좋아한다고 네게 카톡카톡 하고 싶어’라는 ‘요즘 문물‘도 등장한다. 직설적인 90년대 표현 방식에, 현재의 통신 수단을 빌려왔다.

“그 시대를 살았던 분들 중에선 이게 무슨 90년대 노래냐는 이야기도 하세요.” 박문치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이건 90년대 노래가 아니에요. 단지 그 시절의 느낌을 가지고 싶은 요즘 노래예요. 카톡 가사를 썼던 것도 요즘 노래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였어요.”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따로 있다. 박문치 역시 가장 끌렸다는 행복한 감정과 순간을 한 곡에 담아내는 것이었다.

“박문치로 낸 음악은 무조건 재밌고, 행복한 걸 하고 싶었어요. 음. 사실 제가 잘 생긴 남성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이돌처럼 예쁜 여성도 아니고, 어떤 간지 나는 포인트를 잡아서 할 자신도 없었고요. 그냥 내 음악은 스트레스를 안 받으면서 최대한 재밌게,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싶었어요. 재밌는 걸 하다 보니 뉴트로를 하게 된 거예요. 지금 제일 재미있는게 이거니까요.”

박문치가 지금의 음악 스타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엔 부모님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 아버지는 ‘올드팝 마니아’였고, 한 때 7080 라이브 클럽을 운영했던 어머니는 장르에 제한을 두지 않고 다양한 음악을 섭렵한 음악광이었다. 한영애부터 라틴 음악까지 즐겨 듣던 다양한 음악 취향은 박문치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혀준 계기였다. 음악을 시작한 건 초등학교 때였다. “남들 다 하는 클래식 피아노도 했고, 초등학교 3학년 땐 리코더 합주단에 들어가게 됐어요. 그때 합주의 즐거움도 알게 됐죠.” 그러다 색소폰을 배우라는 엄마의 말에, “아저씨 같다”며 기타로 방향을 전환했다. 연주자로도 재능이 뛰어났다. 기타 선생님은 전공을 하라고 했지만, 박문치의 생각은 달랐다. “어차피 음악을 할 거면 작곡 전공을 하는게 낫지 않겠냐”고 했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해요. 제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하고 생각을 했는지.”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제공]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제공]

지금은 ‘뉴트로 장인’으로 인기를 얻고 있지만, 박문치의 역량이 ‘뉴트로’에만 머물진 않는다. ‘요즘 음악’에도 손길이 닿고 있다. 가수 강다니엘의 ‘인터뷰(Interview)’, 그룹 ‘엑소’ 수호의 솔로곡 ‘사랑, 하자’, 대세 알앤비 가수 죠지의 ‘바라봐줘요’에도 참여했다.

“사실 뉴트로로만 너무 이미지를 굳히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제가 유명한 분들의 곡을 작업한 후에 이슈가 됐어요. (웃음) ‘사랑, 하자’가 1위를 했던 그날은 제 생일로 지정하겠다고 했어요. 박문치로 낸 건 아니지만, 현시대에 맞는 곡으로 작곡가로서 최고의 성적을 낸거잖아요. 여러 아티스트와의 작업을 통해 보여주는 또 다른 활동이 제가 꿈꾸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로의 모습이에요.” 대세 뮤지션들의 러브콜을 받는 만큼 언젠가는 크러쉬와 호흡을 맞춰보고 싶다는 마음도 전했다. 자신과 같은 ‘재미 추구형’ 뮤지션일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재미 추구에 열려있는 분 같아 재밌게 작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박문치가 걸어가는 길에 아직 결정된 건 없다. 지금은 뉴트로에 ‘꽂혀’ 있지만, 몇 년 뒤 그의 이름 앞엔 새로운 음악 장르가 붙을지도 모른다. “그때 다른 게 재밌으면 다른 걸 들고 나올 거예요. 제 음악은 ‘열린 결말’이라고 해두고 싶어요. 제가 고집을 부리는게 아니라, 듣는 사람의 몫인 거죠.”


[엑스포츠뉴스 김현정 기자] (인터뷰②에 이어) 오종혁은 온전히 무대에 몰입해 로저의 삶을 살아간다. 뮤지컬 ‘렌트’에서 음악가이자 에이즈 환자 로저 역을 맡아 열연하고 있다. 죽기 전 텅 빈 삶을 구원해줄 마지막 노래를 남기기 위해 고뇌하는 인물이다.

오종혁은 로저가 과거의 자신과 닮았다고 털어놓았다. 1999년 클릭비로 화려하게 데뷔하고 인기를 끌었지만, 정작 그는 스스로 암울한 삶이라고 말할 정도로 힘든 시기를 지나왔다.

“병에 걸리고 죽어가는 것 외엔 예전의 저와 비슷한 점이 많아요. 모든 게 부정적이고 주변에서 어떤 말을 해줘도 들리지 않는 시기였어요. 공연계에 처음 들어올 때 2, 3주간 아무것도 안 했어요. 구석에 등을 붙여서 가만히 대본만 넘겼어요. 내가 여기 왜 와 있는 거지 싶었거든요.

저도 인정할 정도로 암울한 삶이었어요. 주변에 사람이 다가오는 걸 꺼렸어요. 친하다고 생각한 관계자, 스태프, 배우들이 ‘넌 우리와 안 친해지고 싶어 하잖아’라고 말해 굉장히 당황했죠. 그만큼 닫혀 있었고 사람들을 밀어냈어요. 가요계에 있을 때도 대기실에 한 두 팀이 같이 있는 게 불편해서 항상 차에 있었어요. 순서가 되면 무대에서 노래하고요. 굳이 웃어야 하는 게 힘들었고 사람과 마주치는 게 힘들었어요. 그때의 저와 로저가 가장 비슷한 거 같아요. 그때 가진 감정이 앤디 연출의 눈에 보였던 것 같아요.” 


현재의 그는 많이 달라졌단다.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서글서글한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요즘의 저와는 그다지 닮은 부분이 없다고 생각해요. 굉장히 변한 것 같아요. 좋은 사람인 걸 표현하고 어딜 가도 바보가 된 것처럼 헤헤거리는데 오히려 그게 더 좋은 것 같아요. 순간들이 좋고 즐거워요. 아직도 어떤 분들은 너는 가만있으면 슬퍼 보인다고 하세요. 저는 기분이 좋은데. 사람들과 있을 때 너무 즐거워요. 연습할 때 이 사람을 알아가는 게 즐겁죠.”

오종혁은 극 중 로저처럼 20대 청춘을 지나오며 힘든 일을 겪었다. 과거 엑스포츠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여러 사건으로 클릭비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됐고 사기도 당하고 살던 집에서 쫓겨나고 배신도 당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하지만 현재 그는 달라졌다. “돌이켜보면 값진 경험”이라며 긍정적인 마인드를 내보였다.  

“사람, 재산 등을 다 잃은 시기여서 그때 기억은 악밖에 없었고 가장 바닥임을 느꼈어요. 찜질방에서 6개월 이상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고 숨어 지내다 어느 날 내가 뭐 하고 있지 했어요. 이 삶보다 나아지자는 생각이었죠. 지금 생각하면 그럴 때도 있었지 해요. 자존감이 모든 게 낮았던 시기여서 그때 기억을 잘 떠올리지 않으려고 해요. 24, 25세에 겪었다는 게 지금 생각해보면 선물이에요. 지금 나이에 그랬으면 다시 못 일어났을 거예요. 모든 걸 이뤄내고 그런 시기가 왔다면 못 일어났을 것 같거든요. 그 시기를 빨리 겪었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게 된 것 같아요.” 


오종혁은 2008년 ‘온에어 시즌2’로 뮤지컬에 데뷔했다. 뮤지컬 ‘그날들’, ‘블러드 브라더스’, ‘노트르담드파리’, ‘공동경비구역 JSA’, ‘쓰릴미’,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명성황후’, 연극 ‘프라이드’, ‘킬미나우’, ‘킬롤로지’ 영화 ‘무수단’, ‘치즈인터트랩’ 드라마 ‘기타와 핫팬츠’, ‘힐러’ 등에서 활약, 다방면에 활동 중이다. 클릭비 출신이라는 수식어를 떼고 연기자로 자신만의 입지를 다졌다. 

“저는 배우가 익숙한데 아직도 많은 분들이 가수라고 해주시더라고요. 싫은 게 아니라 가수라고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에 민망해요. 평생 배우를 하고 싶어요. 10년 넘게 해오고 있음에도 항상 새롭고 설레요. 연기할 때가 가장 즐겁다고 해야 하나요.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개인적인 만족감이나 포만감이 커요. 나이가 들어도 연기를 계속했으면 좋겠어요.”

김 교수 “추미애 장관의 전천후 윤석열 찍어내기, 오히려 윤 총장을 대선후보 반열까지 올려줬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제6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왼쪽)과 윤석열 검찰총장(오른쪽)이 문 대통령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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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를 둘러싸고 윤석열 검찰총장을 겨냥해 연일 강공을 퍼붓고 있는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코로나 수사’와 ‘조국 수사’에 대해서도 날을 세웠다. 그동안 ‘검언유착’ ‘한명숙 전 총리 수사 비위’ 의혹에 집중했던 ‘비판의 영역’이 국회에서 지적하는 사안 전반으로까지 넓어진 셈이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추 장관은 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조국 전 법무부장관 수사에 대해 “수사 중인 사건이라 언급하기 곤란하지만 과잉수사라든지 반복적인 수사, 무리한 수사가 있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러한 것을 개혁의 대상으로 삼고 인권수사개혁 TF를 가동하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2월 신천지 교회 집단감염 여파로 대구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한 것과 관련해서도 장관의 지시를 어겨 수사를 위한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는 “부가 설명을 하면, 일반적인 지시는 2월28일이었는데 신천지(교회 모임)가 2월16일이었다. 압수수색을 했다면 아마 CCTV를 통해 교인들이 누가 출입했는지 알 수 있었을 것”이라며 “(CCTV는) 보름 만에 자동삭제되는데 골든타임을 놓쳐 자동 삭제되는 기간이 됐다”고 구체적으로 꼬집었다.

앞서 추 장관은 페이스북을 통해 “코로나19가 대구 지역에 확산됐을 때 방역의 긴급성과 감염경로 파악을 강조하고 적극적인 압수수색을 위한 일반 지시를 했다. 그러나 검찰은 저의 지시를 듣지 않고 경찰이 신청한 영장을 두 번이나 기각해 적기에 압수수색을 하지 못해 CCTV를 통한 자료 복구가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법무부와 복지부가 조금이라도 진전된 방향으로 진행하려했다. 복지부에서도 (검찰 수사가) 조금 더 적극적이었으면 했던 것”이라며 “조기에 조치가 있으면 좋겠었다는 발언”이라고 설명했다.파워볼

추 장관은 15년 만에 검찰에 대한 지휘권을 발동했다는 여당 의원의 지적에 대해 “제가 취임한 이후 여러 차례 지휘권을 발동한 바 있으므로 틀린 얘기”라며 “검찰이 스스로 중립성을 깨고 휘말릴 경우 감찰 또는 지휘권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검찰의) 중립성, 독립성을 존중하고 필요한 경우에만 한다”고 밝혔다.

또한 “지휘권 (행사는) 검찰청법에 따른 정의를 세우기 위한 지휘임에도 무력화하는 시도가 있다”며 “저의 소신과 입장은 검찰 조직을 바로 세우고 제대로 된 형사 사법 정의를 세우는 조직으로 거듭나는 것을 목표 두고 있다”고도 했다.

이 역시 페이스북을 통해 “장관의 지시를 듣지 않은 검찰”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 것과 궤를 같이 한다.

그는 “검사 (출신) 장관은 대검과 방향이 같은 경우가 많다. 문민 장관은 강제수사와 별건수사, 인권침해를 시정하는 내용이 많다. 대검이 거북해하는 내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문민 장관의 지휘를 건건이 무력화하려는 시도에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때로는 좌절감이 들기도 한다”고 했다.

추 장관은 “과거 장관은 아침마다 개별 사건을 보고 받고 영장 청구 여부는 물론 수사 개시와 속도 등에 관해 대검에 일일이 지휘를 내렸다고 한다. 법무부와 검찰이 한 몸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였다”면서 검찰이 문민 장관인 본인의 지시를 듣지 않다는 취지의 발언도 내놨다.

추 장관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은 물론 국회에서 지적하는 검찰 수사 사안에 대해 연일 강경 발언을 내놓는 것을 두고 검찰 내부에서는 우려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법무부는 확대 해석을 자제했다. ‘여러 번 지휘권을 행사했다’는 발언은 과거 장관이 대검으로부터 사건 보고를 받은 뒤 구두, 서면을 포함한 모든 지시를 일컫는다는 취지다. 2005년 천정배 당시 법무부 장관이 강정구 동국대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대해 지휘권을 행사한 사례와 다르다는 것이다.

아울러 예전에는 대검에서 법무부장관에 오전마다 사건 보고를 하고 장관이 챙겼는데 지금은 없어졌다는 점에서 예전과 달라진 상황에 대해 소회를 남긴 것이라고도 했다.

한편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30일 윤석열 총장을 향해 강경 발언을 거듭해온 추미애 장관에게 “왜 밖에서 징징대는지 알 수가 없다”며 조롱 섞인 반응을 보였다.

김 교수는 이날 오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윤 총장이 명백한 잘못이 있으면 법에 따라 탄핵하면 되고, 해임은 못 시켜도 징계 할 수 있고“라며 ”검찰청법에 따라 특정 사건에 대해 총장 지휘권을 발동하면 될 텐데”라며 이같이 적었다.

김 교수는 추 장관의 최근 행동을 놓고 “호통치고 화내고 소리지르고 혼내고 손으로 책상바닥까지 치고”라며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그는 “여기저기 다니면서 윤석열 혼내느라 분주한 추 장관님. 정당하고 자신 있으면 탄핵, 징계, 수사지휘권 발동하라. 말만 앞세워 소란 피우지 마시고”라고도 했다.

김 교수는 아울러 추 장관의 행보가 윤 총장의 대선 후보군내 약진을 가져왔다고 진단했다. 그는 “추미애 장관의 전천후 윤석열 찍어내기가 오히려 윤 총장을 대선후보 반열까지 올려줬다”면서 “윤 총장은 공개적으로 떠들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자기 역할에 충실하다”고 했다.

“연락사무소 폭파에 사죄·유감 한 마디 못 받아… 종전선언 추진 웬 말”

미래통합당 태영호 의원. 연합뉴스

미래통합당 태영호 의원은 30일 “우리 재산 수백억원이 날아갔는데 종전 선언 카드를 꺼내는 것은 누가 보아도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이라고 비판했다.

태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정은 남매는 대한민국 국민, 정부는 응당 고발해야!’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김정은 남매가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지 14일이 지났다. 이 사실은 우리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다”며 “일각에선 우리 국민 세금 170억원이 투입된 건물이 날아갔는데 마치 그 책임이 대북제재 때문이라고 미국과 우리 정부에 책임을 묻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정은 남매가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했는데도 우리 정부는 사죄나 유감 한 마디 받아내지 못하고, 김정은 남매의 눈치나 살피고 있다”며 “이제 앞으로 김정은 남매의 갑질은 더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태 의원은 “우리 재산 수백억원이 먼지처럼 날아갔는데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재개하자’, ‘남북 철도·도로 연결하자’, ‘유엔 제재 위원들을 만나서 제재 일부 완화 요청하자’며 종전선언 카드를 꺼내는 것은 누가 보아도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여당을 중국 루신의 소설 ‘아Q정전’ 속 날품팔이 농민에 빗대 “모욕을 받아도 저항할 줄 모르고 오히려 머릿속에서 정신적 승리’로 탈바꿈시켜버리고”라고 비꼬기도 했다.파워볼실시간

태 의원의 이런 발언은 앞서 이날 오전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대대표의 종전선언 언급을 겨냥한 것이다. 김 원내대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가 정착해야 한다. 종전선언은 남북과 적대 관계 청산, 북미관계 정상화의 첫 단계가 될 것”이라며 “보수 강경파와 일본 아베 정부 방해로 실패했지만 한반도 평화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다시 한 번 종전선언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 의원은 “우리는 김정은 남매에게 국내법으로라도 민형사상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김정은 남매를 고발한다고 해서 김정은 남매가 실제 처벌받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러나 법에 따라 그리고 원칙에 따라 해야 할 일은 꼭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남매의 범죄를 우리가 하나하나 계산하고 있다는 인식을 북한에 꾸준히 전달해야 김정은 남매의 횡포를 억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태 의원은 대한민국 헌법상 북한 주민도 우리 국민이라고 설명하며 “대한민국 정부는 우리 국민 김정은 남매를 고발 조치하라”고 촉구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1일 오전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민노총의 불참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사정 대표자 협약식이 취소되자 총리공관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1일 오전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민노총의 불참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사정 대표자 협약식이 취소되자 총리공관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정세균 국무총리와 노사정 대표자들은 1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총리공관 삼청당에서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 협약식’을 열고 합의문을 공동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민노총의 불참 통보로 예정시간 15분 전에 행사가 취소됐다.

지난 5월20일 발족한 ‘노사정 대표자회의’는 한노총·민노총 등 노동계, 경총·대한상의 등 재계,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등이 참여하고 있다. 전날 노사정 간 극적인 타결로 합의문까지 마련된 상태였지만, 민노총이 내부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결국 불참을 선언했다.

이들이 마련한 합의안에는 고용유지지원금 지급 기준 완화와 지원 연장 추진, 전국민 고용보험 도입을 위한 로드맵 마련, 중위소득 50% 이하를 대상으로 한 국민취업지원제도 시행 등이 담겼다.파워볼

민노총까지 참여하는 노사정 주체가 국난 극복을 위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것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22년만의 일이어서 주목됐었다.

그러나 민노총은 내부 반발에 막판 불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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